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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구축을 위한 레오 14세 교황의 언론 플레이

꼬미팍 2025. 6. 2. 16:47

레오 14세 교황의 취임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이는 가톨릭 교회와 언론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는 중요한 사례로 남을 것이다. 2025년 5월 8일, 로버트 프랜시스 프레보스트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되면서 레오 14세 교황이 탄생했다. 이는 가톨릭 역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의 출현으로, 전 세계 언론과 가톨릭 매체들은 그의 취임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교황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가 된다.

레오 14세 교황은 근대 이후 첫 아우구스티노회 출신 교황이기도 하며, 교황 프란치스코에 이어 두 번째 아메리카 대륙 출신 교황이다. 이러한 이력은 언론이 교황의 의미를 프레임화하는 데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바티칸 뉴스, 가톨릭 뉴스 통신(CNA),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NCR) 등 주요 가톨릭 매체들은 레오 14세 교황의 이미지를 어떻게 구축해왔는지를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 언론이 사용한 프레임과 반복적인 수사, 기사 내용상의 특징을 정리하고, 이러한 보도가 실제 교회 개혁 과제나 구조적 문제들과 어떤 괴리를 보이는지 평가해야 한다.

새 교황을 맞이한 가톨릭 언론들은 대체로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톤으로 그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역사적인 첫 미국인 교황”이라는 프레임은 레오 14세가 미국 시카고 태생의 첫 교황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가톨릭 뉴스 통신(CNA) 등 여러 매체는 그가 가톨릭 사상 최초의 미국인 교황임을 부각했다. 미국 주류 언론들도 “첫 미국 출신 교황”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이 소식을 전하며, 교황의 국적과 문화적 배경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보도는 단순히 교황의 출신을 강조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가 교회의 세계화와 다양성의 상징으로 포지셔닝되는 전략을 드러낸다.

페루 등 교황과 인연이 있는 다른 국가들의 언론은 그를 “우리 출신 교황”으로 묘사하며 자국과의 연결성을 부각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페루의 한 신문은 “레오 14세, 치클라요의 아들(Habemus Papa peruano)”이라는 제목으로 그가 페루 시민권자이자 Chiclayo 교구장 출신임을 내세웠다. 이러한 보도는 교황의 다문화적 배경을 긍정적으로 부각하면서도, 교황직의 보편성과 영적 측면을 놓치지 않으려는 균형을 보여준다.

또한, 레오 14세 교황의 소탈한 인간미와 겸손한 목자라는 프레임도 반복해서 등장했다. 그의 일상적 모습과 겸손한 성품을 보여주는 일화들은 언론이 교황을 친근하게 이미지화하는 데 크게 활용되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헬스장 트레이너 일화”이다. 교황이 추기경 시절 일반 회원 “로버트”로서 조용히 운동을 다닌 일화는 그의 겸손하고 인간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이탈리아 헬스장의 트레이너 발레리오 마셀라는 교황 선출 소식을 TV로 보고서야 그가 자신이 가르치던 ‘회원님’이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이러한 일화는 언론을 통해 널리 퍼지며 교황의 겸손한 성품과 자기관리 이미지에 크게 기여했다. 마셀라 트레이너는 “교황님이 우리 회원이었다니 기쁨이 두 배, 세 배였다”며, 새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에 주변인들이 느낀 친밀감과 자부심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교황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구축하는 데 기여했지만, 동시에 교회의 구조적 문제와 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는 소홀히 여겨졌다.

레오 14세 교황에 대한 또 다른 주요 프레임은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혁 노선을 계승하는 소통형 리더라는 이미지이다. 바티칸 뉴스는 새 교황의 첫 행보를 전하면서, 그가 성 베드로 대성당 발코니에 등장해 이탈리아어로 “모두에게 평화가 함께하기를!”이라고 인사한 장면을 부각했다. 이는 평화와 겸손을 중시한 전임자의 정신을 잇겠다는 신호로 해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교회의 구조적 문제와 개혁 과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수 있다.

레오 14세 교황이 “평화를 열망하며 대화로 해결하자”고 세계에 호소하는 장면은 강조되었지만, 정작 교회 내부의 평화를 어떻게 이루고 보수-진보 간 균열을 치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깊이 다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괴리는 언론이 그린 레오 14세 교황의 초상이 매우 호의적이고 매력적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을 흐릿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가톨릭 언론들은 새 교황의 인간적 면모와 비전을 조명하면서 독자들의 기대감을 높였지만, 정작 교회 내부의 구조적 난제들 – 성학대와 기강 문제, 개혁의 연속성과 반발, 여성의 위치, 교황청 재정과 투명성 등 – 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루지 않거나 잠시 언급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괴리는 “언론 프레임 속 교황”과 “현실 세계의 교황”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이라고 할 수 있다.

교황청 홍보와 가톨릭 언론은 교황의 일상적 면모를 부각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교황을 성역화하기보다는 친근한 “우리 동네 신부님”처럼 느끼게 만드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교회의 힘든 이슈들을 잠시 잊게 하는 “이미지 마케팅” 역할을 할 수 있다. 헬스장 일화에 사람들이 미소 짓는 동안, 교회 내 성직 남용 문제나 교리적 논쟁은 보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마련이다.

결국, 언론은 시간이 지나면서 교황의 이미지 구축과 더불어, 그가 직면한 어려움과 한계도 투명하게 보도하여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레오 14세 교황의 진짜 이미지는 과학과 세상의 진실을 통해 누구나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 언론은 장미빛 서사를 끊임없이 생산할 것이고 교황은 주변의 실수를 덮어주며 검은 속내의 지지자를 늘려갈 것이다. 언론 역시 교황을 하나의 이미지로 소비하는 데 머물지 않고, 그 행보를 날카롭게 점검하고 건설적으로 비판하는 역할을 다해야 한다.

지난 14일 세계 1위 테니스 선수 야닉 시너(왼쪽)와 레오 14세. /EPA 연합뉴스

마지막으로, 새 교황의 이미지를 다듬는 일과 교회의 어두운 그늘을 비추는 일 사이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 한 번도 균형을 잡은 적이 없다. “교황님이 우리 회원이었다니 기쁨이 두 배, 세 배였다”는 마셀라 트레이너의 말은 교황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교회의 구조적 문제들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과학적이고 사실 기반의 이야기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