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 우표가 식민 시대 기념물에서 영감을 받아 논란의 중심에 선 사건은 교황 프란치스코가 청년들을 이끌고 지평선을 향해 가리키는 모습을 담은 디자인 때문입니다. 이 우표는 리스본의 발견의 기념비에서 영감을 받았으며, 이 기념물은 포르투갈의 발견 시대를 기념하고 헨리 항해왕자의 사망 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1960년에 세워졌습니다. 비판자들은 우표가 식민지적 착취와 억압을 기념한다고 주장하며, 바티칸이 식민 시대 "발견의 교리"를 공식적으로 폐기한 지 몇 주 만에 이러한 이미지를 받아들인 것을 아이러니하게 여겼습니다. 더욱이, 발견의 기념비가 안토니우 데 올리베이라 살라자르의 독재 시절에 건설되었다는 사실은 포르투갈의 "국가 선전부" 이미지와의 비교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포르투갈 출신의 바티칸 관리, 카를로스 알베르투 드 피뇨 모레이라 아제베두 주교는 우표가 "취향에 어긋난다"고 표현하며, 이는 보편적 형제애와 모순된다고 밝혔습니다. 포르투갈 사회는 식민지 과거에 대한 반성의 시기를 겪고 있으며, 마르셀루 레벨루 대통령은 포르투갈이 과거 식민지 시대의 학대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제안은 남유럽 지도자가 식민지 시대에 대한 국가적 사과를 제안한 최초의 경우로,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나왔습니다.
우표는 초기 발행량이 45,000부였으며, 액면가는 3.10유로였습니다. 이 우표는 논란을 불러일으킨 후 바티칸 우체국에서 판매 중단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바티칸의 가정, 평신도 및 생명 국에서 세계 청년의 날을 감독하며 우표를 처음 소개할 때, 그것이 영감을 받은 기념물의 복잡한 역사에 대한 언급이 없었습니다. 성명에서는 교황 프란치스코가 청년과 교회를 이끌고, 헨리 항해왕자가 신세계를 발견하도록 선원들을 안내한 것처럼, 이 시대의 변화를 발견하도록 안내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리스본의 세계 청년의 날 재단 대변인인 로사 페드로소 리마는 우표에 대한 다른 해석은 교황의 의도와 관련하여 "남용적"이라고 주장하며, 교황 프란치스코가 존중과 벽을 허물며, 국경을 확장하고, 다양한 사람들, 문화 및 종교와 소통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바티칸이 교황 프란치스코의 세계 청년의 날 참석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교황은 5월 4일에 발표된 비디오 메시지에서 청년들에게 "리스본에서 만나자"고 말했습니다.